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
눈을 뜨자마자 그의 생각이 났다. 과거 태평성태를 누렸다던 그는 21세기의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덕임이처럼 식견에 밝지 못해 감히 정세에 대해 평론할 재주는 갖지 못한다. 또한 그런 얘기를 적으려고 노트북을 킨 것도 아니다. 다만 덕임이의 입장에서 이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한 사람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임금의 사랑이라면 더욱이 완전하고 비할 데 없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본디 내 입장이 아니라면 어렴풋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가 그에 해당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며 처음으로 후궁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매체에선 대부분 그들은 왕의 권력을 수단으로 정계에 오르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표현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덕임이도 그에 해당하는 인물로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실로 평범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했다. 계급사회, 유교문화를 섬겼던 시대적 배경치고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궁녀이자 여성이었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환경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알기 어렵다. 나 자신을 알기 보다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기 때문이고, 그 규칙을 어기면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인데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덕임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 셈을 하게 된다. 난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
'원치 않는 것을 얻었다 해서 모든 이가 그에 만족하고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조의 법도에 따르면 후궁은 궁 밖으로 출입이 불가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왕을 기다리며 보내야 한다. 옥좌에 손상이 간다는 이유로 궁녀가 하는 하찮은 일을 해선 안된다. 또한 뱃속의 아이를 잃어도 크게 슬퍼할 수 없다. 국모로서 국가의 생명을 잃은 다른 아이들까지 생각해야 하기에 울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덕임이는 후궁으로서 실질적으로 정세에 관여하고 바꿀 수 있는 일이 없지만, 그저 왕이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만한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앉았다. 본디 나 또한 많은 것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경험을 해봐야 느끼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음 속 깊이 이해할 수 없고 단지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느낀다면 그것만큼 허송세월이 어디있을까.
그러나 덕임은 정조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 많은 것들을 감내하고 따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켠에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이 진정 원하던 것이 맞는지 생각하고 확인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주체적인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 자신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랑일지라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주체적인 내가 선택한 일이니 상관없었을까?
아닌가 마음껏 웃고 슬플 일을 만들 수 없었기에 후회했을까?
덕임도 확신하고 선택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 그를 다시 볼 수 없음에 자신 없다는 것만이 확실해 선택한 거라 생각한다. 그는 똑똑하기에 이후의 삶도 나름 잘 헤쳐왔겠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후궁이란 자리는 마음을 병들게 하기 충분했다고 본다. 삶은 그런 것 같다. 일이 코앞에 닥쳐 헤치우다 보면 지나쳐 오는 것
'오늘은 행복하다. 어느 날은 슬퍼지고, 결국 살아간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마냥 기쁠 수도 마냥 슬플 수도 없는 것'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불가피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다음 생에 만나 자신을 다시 만난다면 못본 체 제발 스쳐지나가달라 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정조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온다면 그 사랑을 피할 수 없을거란 걸 알아서 였을까? 그러니 제발 자신을 스쳐지나가 달라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을까.
이 생에 완전히 나로서 살 수는 없었던 덕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단지 후회, 연민, 고통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바보같게도 정조는 그 깊은 맘까지 모두 알리가 없다. 그저 자신이 다시 한 번 잡으면 안 될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염려된다. 그는 단 한번도 왕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덕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궁녀가 아니고, 왕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저 평범한 남여로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모르겠다. 잘 상상이 가질 않아. 너는 궁녀인게 어울리는데
전하도 임금이신게 어울립니다.'
여기서 드러난 둘의 상반된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덕임은 끊임없이 우리의 사랑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온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지만 산이는 그걸 알리가 없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간다는 일은 이해가 모두 되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결국 그런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끊임없이 샘솟는 사랑.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보는 내내 답답한 적도 많았다. 왜 굳이 중전과 후궁을 따로 두어야 하는지, 왜 여자는 궁밖 출입이 불가한지, 덕임도 총명한 사람이기에 기회만 줬다면 함께 정세를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복합적인 생각이 내내 떠다녔다. 이미 지난 시간 속 시대적 배경을 따온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 제도가 쓸모없기에 사라진 현재의 시점으로 봤을 땐 그저 찾아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런 법도는 모두 쓰잘데기 없으니 같지도 않은 일로 마음아파하지 말라고 말이다. 홀로 임금을 기다리며 긴 시간 혼자 있었을 덕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주체적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삶을 살았을까. 평생을 배불리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겠지만, 연인간의 사랑만으로 인생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 중에 그거 딱 하나 빼고 나머지 다 포기해야 된다면 조금은 불행한 쪽에 가깝지 않을까? 21세기의 눈으로 바라본 그 사랑은 절대 선택하고 싶지 않은 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한 덕임에게 묻고 싶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아직 너무 어려 사랑이 뭔지 모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