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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

말마따나 2022. 2. 7. 10:37

눈을 뜨자마자 그의 생각이 났다. 과거 태평성태를 누렸다던 그는 21세기의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덕임이처럼 식견에 밝지 못해 감히 정세에 대해 평론할 재주는 갖지 못한다. 또한 그런 얘기를 적으려고 노트북을 킨 것도 아니다. 다만 덕임이의 입장에서 이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한 사람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임금의 사랑이라면 더욱이 완전하고 비할 데 없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본디 내 입장이 아니라면 어렴풋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가 그에 해당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며 처음으로 후궁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매체에선 대부분 그들은 왕의 권력을 수단으로 정계에 오르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표현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덕임이도 그에 해당하는 인물로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실로 평범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했다. 계급사회, 유교문화를 섬겼던 시대적 배경치고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궁녀이자 여성이었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환경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알기 어렵다. 나 자신을 알기 보다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기 때문이고, 그 규칙을 어기면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인데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덕임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 셈을 하게 된다. 난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

'원치 않는 것을 얻었다 해서 모든 이가 그에 만족하고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조의 법도에 따르면 후궁은 궁 밖으로 출입이 불가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왕을 기다리며 보내야 한다. 옥좌에 손상이 간다는 이유로 궁녀가 하는 하찮은 일을 해선 안된다. 또한 뱃속의 아이를 잃어도 크게 슬퍼할 수 없다. 국모로서 국가의 생명을 잃은 다른 아이들까지 생각해야 하기에 울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덕임이는 후궁으로서 실질적으로 정세에 관여하고 바꿀 수 있는 일이 없지만, 그저 왕이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만한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앉았다. 본디 나 또한 많은 것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경험을 해봐야 느끼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음 속 깊이 이해할 수 없고 단지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느낀다면 그것만큼 허송세월이 어디있을까.

 

그러나 덕임은 정조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 많은 것들을 감내하고 따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켠에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이 진정 원하던 것이 맞는지 생각하고 확인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주체적인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 자신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랑일지라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주체적인 내가 선택한 일이니 상관없었을까?

아닌가 마음껏 웃고 슬플 일을 만들 수 없었기에 후회했을까?

 

덕임도 확신하고 선택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 그를 다시 볼 수 없음에 자신 없다는 것만이 확실해 선택한 거라 생각한다. 그는 똑똑하기에 이후의 삶도 나름 잘 헤쳐왔겠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후궁이란 자리는 마음을 병들게 하기 충분했다고 본다. 삶은 그런 것 같다. 일이 코앞에 닥쳐 헤치우다 보면 지나쳐 오는 것

'오늘은 행복하다. 어느 날은 슬퍼지고, 결국 살아간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마냥 기쁠 수도 마냥 슬플 수도 없는 것'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불가피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다음 생에 만나 자신을 다시 만난다면 못본 체 제발 스쳐지나가달라 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정조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온다면 그 사랑을 피할 수 없을거란 걸 알아서 였을까? 그러니 제발 자신을 스쳐지나가 달라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을까.

이 생에 완전히 나로서 살 수는 없었던 덕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단지 후회, 연민, 고통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바보같게도 정조는 그 깊은 맘까지 모두 알리가 없다. 그저 자신이 다시 한 번 잡으면 안 될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염려된다. 그는 단 한번도 왕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덕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궁녀가 아니고, 왕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저 평범한 남여로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모르겠다. 잘 상상이 가질 않아. 너는 궁녀인게 어울리는데

전하도 임금이신게 어울립니다.'

여기서 드러난 둘의 상반된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덕임은 끊임없이 우리의 사랑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온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지만 산이는 그걸 알리가 없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간다는 일은 이해가 모두 되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결국 그런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끊임없이 샘솟는 사랑.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보는 내내 답답한 적도 많았다. 왜 굳이 중전과 후궁을 따로 두어야 하는지, 왜 여자는 궁밖 출입이 불가한지, 덕임도 총명한 사람이기에 기회만 줬다면 함께 정세를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복합적인 생각이 내내 떠다녔다. 이미 지난 시간 속 시대적 배경을 따온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 제도가 쓸모없기에 사라진 현재의 시점으로 봤을 땐 그저 찾아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런 법도는 모두 쓰잘데기 없으니 같지도 않은 일로 마음아파하지 말라고 말이다. 홀로 임금을 기다리며 긴 시간 혼자 있었을 덕임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주체적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삶을 살았을까. 평생을 배불리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겠지만, 연인간의 사랑만으로 인생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 중에 그거 딱 하나 빼고 나머지 다 포기해야 된다면 조금은 불행한 쪽에 가깝지 않을까? 21세기의 눈으로 바라본 그 사랑은 절대 선택하고 싶지 않은 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한 덕임에게 묻고 싶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아직 너무 어려 사랑이 뭔지 모르는 걸까요?